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_세상을 보는 방법

by Galneryus 2025. 4. 24.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양철북_요시노 겐자부로)

01.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작

네가 느낀 것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이 넓은 세상의 분자란다.
다 함께 모여 세상을 만들고 모두 세상의 파도에 맞춰 살아가고 있지.
세상의 파도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분자운동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사람은 일반적인 물질의 분자하고는 다르지
P.23/264 <이상한 경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마지막 애니메이션 작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2023)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전에 <바람이 분다>(2013)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었지만, 그 결정을 번복하면서까지 꼭 제작해야 한다고 느낀 작품이었다.
어쩌면 일종의 사명의식을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이 작품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원작이라는 말을 듣고, 애니메이션을 보기 전에 원작을 먼저 읽어야겠다고 생각해 YES24에서 책을 구매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책과 애니메이션 사이에는 스토리상의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다만, 책의 제목과 주제는 그대로 차용되었다. (그마저도 이야기 속에 숨겨져 있다.)

책의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 일본 제국주의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이다.

이 책은 조카와 삼촌이 주고받는 편지의 형식을 빌려,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마치 세상의 중심이 된 것처럼 군비를 팽창하고, 영토를 확장하며 대동아전쟁을 준비하던 일본 제국주의의 광기 속에서 우리가 지나치고 놓쳤던 주제들 — 반전, 빈부격차, 학교 폭력, 약자를 돌봐야 하는 이유 등 — 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02. 세상의 넓이를 인지하기 까지..

 

주인공 혼다 준이치의 친구들은 그를 ‘코페르’라고 부른다.
‘코페르’는 준이치의 외삼촌이 지어준 별명이다.

외삼촌은 준이치가 ‘코페르니쿠스적 사고’를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코페르니쿠스’라고 불렀고, 그것이 어느새 줄어들어 ‘코페르’가 된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모든 사람들이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여겼던 시절, 그 ‘진리’라고 믿어지던 생각을 깨고,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혹은 우주 속 수많은 천체 중 하나라고 주장했던 혁신적인 인물이다.

어릴 적 아이들은 누구나 자신의 세계를 ‘지동설’이 아닌 ‘천동설’처럼 바라보게 된다.

예를 들면, 학교 가는 길은 “우리 집에서 2분 정도 직진하다가 우회전, 그리고 또 직진...”과 같은 식이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자신이 인식할 수 있는 반경만을 세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숙한 어른, 성숙한 사회는 성장함에 따라 인식 가능한 반경이 점차 넓어지면서, 세상의 넓이를 인지하게 되고 그제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구나. 수많은 사물과 사람의 존재, 그리고 그 관계로 이루어진 이 사회라는 우주의 천체 중 하나에 불과하구나...”

그러나 1930년대 당시 일본은 광기에 사로잡혀, 천동설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주변국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외삼촌, 사람은 정말 분자인 것 같아. 오늘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어.
" 외삼촌이 깜짝 놀란 듯 눈이 동그래진 모습이 흐린 자동차 불빛에 비쳤다.
코페르 얼굴에도 평소에 볼 수 없던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그래....."
외삼촌은 대답하면서 생각에 잠겼는데 이윽고 조용하게 말했다. 
"그런 건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해. 무척 중요하니까."
P21/264 <이상한 경험>

 

03. 나라는 우주와 타인이라는 우주의 대면

1930년대 당시 일본은 타인을 나와는 다른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이고, 세상을 내 중심이 아닌 또 하나의 우주로 마주하며 소통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비교적 여유로웠던 코페르는 친구 우라가와의 가정 형편을 알게 되고, 자신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라가와의 삶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코페르에게 삼촌은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집이 가난하다는 걸 떠나서, 우라가와와 너희들이 다른 게 뭐라고 생각하니?”

삼촌의 질문에 코페르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그 질문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삼촌 또한 코페르에게 꼭 전하고 싶은 중요한 사실이 있었기에, 집으로 돌아간 후 편지를 쓰게 된다.

모두가 똑같이 대접받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그 세상은 거짓이야. 정직한 사람이라면 이 생각에 반대하지 않을 꺼야. 그런데 우리가 정직하게 생각해도 세상은 정직해지지 않는구나. 인류는 진보했지만 그 진보가 사람들 마음속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어.
P121/264 <가난한 친구>

 

외삼촌은 우라가와가 살아가는 환경이나 외모, 그리고 그에게서 나는 냄새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코페르에게 알려준다.

우라가와가 자신의 집에서 맡고 있는 일과 그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 존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라가와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비관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하며 세상에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삶이 얼마나 대단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일인지 일깨워주는 것이다.

반면, 코페르와 친구들은 세상에 필요한 무언가를 생산하기보다는, 소비 생활에만 익숙하다는 사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라가와를 무시하고 얕보는 시선이 얼마나 근거 없고 오만한 것인지를, ‘나’를 중심으로가 아니라 ‘세상’을 중심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외삼촌은 코페르에게, 그런 시선이 얼마나 주제넘고 분수를 모르는 어리석은 행동인지를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04.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갑질’이 만연하고,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을 해치고 파괴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라는 우주를 중심에 두고 타인을 단지 하나의 개체로 바라보기에,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짓밟는 행동을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나’라는 우주와 ‘타인’이라는 우주가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내가 타인의 우주를 함부로 파괴하거나 침범할 권리도, 정당성도 없다.

내가 아프면 타인도 아프고, 내가 슬프면 타인도 슬플 수 있다는, 너무도 기본적인 이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작가는 우리에게 타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며, 이렇게 묻는다.

“그대들,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